출근3일째.
전임자였던 선배가 떠나고, 오늘부터는 내가 근무하는날이다.
같이 일하는 사모님이 계시지만 아직은 모든게 어색한 상태.
인수인계 받은 그대로, 놓치는거 없이 무난한 하루가 되길 바래본다
이날은 쌀쌀하고 비 내리는날이라 그럴까
팥죽 가능하냐고 물어보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가 오면
"넵 xxxx 입니다"
라고 가게 상호를 말해야하는데
"여보세욤?"
이라고 개인핸드폰처럼 받아버렸다 아차.
(일을 오래하다보면 반대상황도 발생한다. 예전에는 개인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넵 xxx 개발2팀 허x 대리 입니다"
라고 전화를 받기도 했었다 -_- 친구가 어리둥절)
팥죽 문의 전화가 온뒤 얼마후
정말로 손님 세분이 오시더니 팥죽을 주문했다.
아니?
세계맥주집에서 팥죽을?
그렇다 우리가게는 팥죽이나 대추차까지 메뉴가 들어가있다.
세계맥주집이라고 하기에는 메뉴 포커스가 꽤 넓은편.
얼마 지나 알게 된 사실인데,
사모님께서 낮에는 가게를 찻집으로 운영할 계획이 있으셨다고 한다.
전업주부로 오랜 기간 살아오셨던 사모님께서는
대부분의 메뉴를 직접 일일이 다 만드신다
(팥죽도 팥을 직접 삶은 후 만든다-_-)
나라면 잘 나가는 메뉴만 남기고, 메뉴의 수를 줄이거나
부분적으로 대체가능한것은 인스턴트를 (대신 가격을 내리고) 이용한다면
운영이 훨씬 편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으로
사모님은 직접 재료를 준비하고 제작 하시는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거같다.
"팥죽 2개요"
손님은 팥죽을 주문한후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병꺼내어 다시 착석했다.
으아니?
팥죽에 맥주를 ??
역시 세상은 알수 없는 일 투성이다.
사모님이 팥죽을 준비하는걸 옆에서 지켜보는게 오늘의 일.
삶아서 얼려둔 팥소를 냉장고에서 꺼내 해동한다
해동 후에는 쌀가루를 넣고 적절히 물로 농도를 맞춘다.
그후 별도의 냄비에 새알을 넣고 삶은후
한참을 더 끓인다.
그렇게 손님의 주문대로 세 그릇을 완성
팥죽 전용그릇에 담아 서빙하면 완료
손님에게 들고가다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_-) 굉장히 조심스럽게 서빙을 했다
조선시대 새색시 저리가라 할만큼 조신한 걸음으로,
2초면 갈 거리를 거의 10초가 다 되어 테이블에 도착
미심적게 팥죽을 바라보시는 손님들이 몇술 뜨시더니 표정이 환해진다
꽤 맛있게 드시는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셨다
손님들이 흡족해하니,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직접 만드는 수고로움을 충분히 감수하는, 사모님의 자부심을 아주 약간 이해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가게의 보스라면 팥죽은 메뉴에서 없앨것이다.)
이날은 궂은 날씨때문인지. 팥죽 손님들 이후 한산한 편..
얼마후 사장님이 가게에 찾아오셨다.
(우리가게 사장님의 남편)
이제 연말이니 오늘부터 캐롤을 틀어보면 어떨까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가게 컴퓨터로 멜*에 들어가 캐롤모음을 플레이
금새 가게안은 온통 캐롤캐롤
때이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가득.
지인분과 맥주를 마시러 오셨던 사장님께서는 계산을 하시며 한마디.
"미스터 허 선곡 굳이야"
엄지척. (-ㅅ-)b
오랜만에 듣는 캐롤은 나도 참 좋았다
그러나, 좋았던 기분은 3~4일정도만.
이날 가게에서 틀기 시작했던 캐롤송은 12월내내
심지어 1월초까지도 울려퍼졌다.
몇달동안 캐롤만 쭈욱 듣는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로 그후로 나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선곡할수 있을때에는 (집이라던가) 절대로 캐롤을 틀지않았다.
p.s.
이날 처음으로 혼자 대추차를 만들어봤다!
p.s.
이날 가게의 가장 큰 매상을 몰린 메뉴는 팥죽이였다
내가 일하는 가게는 세계맥주집이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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