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냥사는이야기

알바용병의 호프집 알바일기 13. 초보알바의 나홀로 가게 오픈부터 마감까지.

by hermoney 2017. 6. 23.
반응형

이날은 가게 오픈부터 마감까지 온전히 나 혼자서 하게 된 날이였다

 

가게 일에 어느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아직 혼자서 전부 컨트롤 할 정도는 아닌데

"혼자 할수 있지? 부탁해~" 하시는 사모님의 말씀을 들으니

나는 스스로 내린 자체 평가보다는 높은 점수를 받는 모양이다.

(알바생이 나 혼자뿐이니 가게입장에선 다른 대안이 없긴 하다-_-)

 

평소보다 일찍 출근.

가게를 오픈한 뒤.

미리 챙겨둬야 할건 없는지 살펴보며 내부를 한바퀴 돌았다

 

 

손님 맞이 끝.

이제 손님을 기다리며 대기하면 된다

나름 자유로운 시간이니, 자리에서 TV를 보거나, 컴퓨터로 뭔가 검색을 하거나

창가 쪽에 앉아 바깥풍경을 보며 쉬거나 책을 읽어도 된다

유유자적 한가함을 즐길수 있는 꿀같은 시간.

 

그러나, 꿀같은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덩그러니 홀로 가게에 있으니, 편치 않는 감정.

뭔가 불안함이 자꾸 느껴져왔다

 

 

이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아직 나는 배우지못한 메뉴가 있기 때문이었다.

즉, 나 혼자 있을때 주문이 들어오면 불가능한 메뉴가 있었다

"아! 손님들이 오늘따라 내가 만들줄 모르는 메뉴만 시키면 어쩌지???어쩌지???"

 

- 골뱅이 무침 (아직 못배움)

- 모래집 볶음

- 인삼차, 오미자차

- 황도

 

우리 가게는 손님의 주문이 들어왔을 때, 사모님이 메뉴를 만들면서 그때그때 만드는법을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위 4가지 메뉴는 아직까지는 주문을 받은 적이 없다

 

정 급하면 어떻게 내스타일대로 (-_-) 만들면 되긴 하겠으나, 

사모님의 손맛으로 나가던 메뉴가 순식간에 자취생의 맛으로 나갈수도 없는일인데다,

더 중요한건, 아직 나는  위의 메뉴들의 쟤료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만들수 없는 메뉴를 손님이 주문했을 때를 대비해 두어야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 멋대로 만들기"는 좋은 대응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고민 끝에 만든 나의 손님대응메뉴얼은 이렇다

 

위급시 손님 대응 메뉴얼.

 

1. 손님이 골뱅이 무침을 시킨다.

2. 예 알겠습니다 손님 ! 하며 일단 주방으로 간다.

3. 주방에서 30초~1분쯤 뜸을 들인 후 주문한 손님을 찾아 간다

4. 난감함과 미안함을 담은 표정을 지으며

   "어쩌죠 손님? 재료가 다 떨어진걸 아직 보충하지 못했네요. 죄송한데 다른 메뉴는 안될까요?"

5. 만약 손님이 "그럼 모래집볶음(이것 역시 내가 만들줄 모르는 메뉴)주세요"라고 한다면

   다시 4번 메뉴얼로 돌아간다 ....-_-

 

좋다 완벽하다 이렇게 대응하면 되겠구나.

(어째 갈수록 잔머리만 늘어가는 느낌)

 

최악의 상황(손님이 메뉴를 취소하고 재주문한 메뉴마저 내가 만들지 못하는 경우)까지 대응할 수 있는

"위급시 손님 대응 메뉴얼"을 만들어 두니

어수선했던 마음이 어느새 진정이 되고 편해져서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셨다

 

 

슬슬 손님이 입장할 시간이 되어 카운터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이날은 이상하리만큼 손님이 없었다

 

가게입구에 "오늘은 어리버리한 알바생 혼자 영업합니다.골뱅이무침과 닭모래집볶음등등

만들지 못하는 메뉴가 다양하게 많으니(....), 다른 가게를 이용해 주십시오."라고 공지되있기라도 되있는걸까?

이렇게 손님이 없을줄이야~!

나는 어느새 손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되어있었다

 

그때

          가게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

 

"어서오세요 !"

 

첫 손님은 가족손님들로,부모님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딸.

세 사람모두 골프웨어로 중무장 하고 있었다.

(가게 근처에 C.C와 골프연습장이 있어서인듯)

 

내가 만들수 없는 메뉴에 대한 걱정때문에, 손님 응대메뉴얼까지 준비했는데

막상 손님이 너무 없으니 기다려지고, 드디어 등장한 첫 손님은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가족손님들은 준비된 나의 대응메뉴얼이 필요없는 한치땅콩을 주문했다 (다행이다!)

맥주는 호가든.

가족끼리의 오붓하고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문제라면 그 대화가 나한테까지 들린다는 것.

(손님들의 대화를 듣고픈 마음은 없었기에 가게 배경음악을 살짝 올렸다

그랬더니 그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올라가서 대화내용이 들리는건 결국 똑같았다 -_-)

듣다보니,그들은 생활전반에 걸쳐 나보다는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듯 했다

(현재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보다는 풍족한 상황이긴 하다-_-)

그러나  이용중인 차량의 크기, 집 평수를 제외한 일상다반사에 관련된 고민이나 이야기거리들은

나, 내 친구들, 우리 부모님의 대화와 별 다를게 없었다

 

(나는 버스를 타지만 그들은 벤츠 E-Class를 탄다는 정도의 차이? -_-

뭐 어차피 벤츠나 버스나 바퀴달린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는건 같다...-_-)

 

돈이 많건,적건 사람 사는건 다 비슷하구나 싶기도하고.

그렇게 다른 가족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괜히 부모님의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카운터 자리의 TV에서 "라디오스타"가 시작될때쯤 그 가족손님들은 가셨고

가게를 찾는 다른 손님은 없었다.

 

카운터 자리의 TV에서 "라디오스타"가 나올때쯤 그 가족손님들은 떠나고

더이상의 손님은 없었다.

라디오스타를 조금 더 본후 가게를 정리.

 

드물게 손님이 없던 날이였다.

가게 입장에서는 '완전 손해'인 날이였지만

초보알바 입장에서는

나홀로 오픈부터 마감까지 무사히 완료한 '나름 괜찮은'날이였다

 

p.s.

위급시 손님대응메뉴얼을 준비해두긴 했으나,

손님들이 많았거나, 행여라도 대응메뉴얼을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생지옥이 될 뻔했다

휴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과 공유 꾹꾹 눌러주시면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