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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사는이야기

알바용병의 호프집 알바일기 18, 아빠의 청춘

by hermoney 2017.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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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이날의 첫 손님은 내게 특이한 인상을 주었다

 

 

어두워진 저녁시간임에도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_-)입장한 여자손님은

나를 보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늘 먹던 거 주세요(찡긋)"

뭐....뭐야....?

늘 먹던거라니??

초면인 사람인데 늘 먹는게 뭔지 내가 어떻게 알수 있단 말인가 -_-

 

 

==???

이런 멍한 표정을 지으며 갸우뚱하니

그제서야 손님이 "아 우리 처음인가요? 한치땅콩 주세요." 라고 한다

가게 단골손님인가보다

 

그렇게 이날 첫 오더는 한치땅콩.

무난한 시작이다. (한치땅콩은 준비하는게 수월해서, 주문들어오면 나도 좋다)

 

몇개월 일하다보니, 이 손님은 가게에 자주 찾아오는 단골손님으로

선글라스도 늘 착용 (선글라스를 착용하지않은모습은 딱한번 봄-_-)

안주는 항상 한치땅콩, 맥주도 언제나 호가든 4병 (아주가끔 5-6병)

선호하는 자리는 늘 가게의 제일 구석진 자리였다.



두번째 손님은 7명의 단체손님

척 봐도 업무관계의 사람들이 모임. 회식이였다

 

안주는 오징어 땅콩2/대추차 2잔 주문

(대추차 주문을 받을때마다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된다

여긴 찻집이 아니라 맥주집인데. 대추차의 인기가 식을줄을 모른다

아마 대추차를 파는 곳이 별로없어서 술을 즐기지 않는분들은 호기심에 도전해보는 것일수도 있고

모르겠다 도대체 왜?)

 

단체손님은 안주는 간단하게 시켰지만, 맥주는 꽤 많이 마셨고

그만큼 술 자리는 길어졌다

 

이후 더이상의 추가 손님은 없었기에 사모님은 먼저 퇴근.

나는 카운터에 앉아 TV를 보며 만들고 남은 대추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회식테이블의 남자 손님 한명이 빈 테이블로 이동을 하더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들로 보이는 아이와의 영상통화.

 

영상통화라 그럴까 스피커폰 모드라 아이의 목소리가 내 자리까지 들려왔는데

주내용은 이랬다.

 

"아빠 빨리와~ 아빠 빨리와~ 아빠 빨리와~ 아빠 빨리와~"

"응 아빠도 빨리 가고싶어. 일하는 중이라 금방 끝내고 갈께"

"아빠 빨리와~ 아빠 빨리와~ 아빠 빨리와~ 아빠 빨리와~" (..-_-)

 

아빠의 어떤말에도 상관없이 꼬마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ㅋ

 

내가 꼬마였을때가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날.

그런날은 아버지의 귀가가 늦어졌고, 어머니에게 그런날이 좋을리는 없었다

너무 늦어지신다 싶어지면 어머니께서 전화를 걸어 빠른 귀가를 종용하셨는데

그런 통화를 하실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나긋하실리는 없었고

어머니의 기다림에 나도 덩달아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었다

수화기 너머 아버지는 "알았어 금방 들어가"

하시다가 그런 통화가 반복되면 버럭하실때도 있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들어오실때까지 30분주기로 전화하심 -_-)

 

어린 내생각에도 이해하기 어려웠던것은

금방 온다고 했으면서 아빠는 왜 안오는 것인가

아빠가 금방 온다는데 엄마는 왜 저렇게 짜증을 내는것인가

엄마가 짜증까지 내는데 아빠는 전화를 받고도 왜 아직 안 들어오시는 것인가

엄마의 전화가 아빠를 일찍 들어오게 하진않는거 같은데 왜 자꾸 전화를 하시는걸까 !

 

그리고 언젠가 부터 아버지의 술약속이 있는 날

어머니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지 않으셨다.

 

.........대신 나에게 전화를 시키셨다 -_-

"아버지 빨리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라고

(사실 내 입장에서는 더 귀찮졌다는)



......

화상통화를 하던 남자손님은 정말 빨리 집에 가고싶은 표정이였다

하지만 먼저 갈수 없겠지.

나도 회사 생활을 꽤 오래해봤기에 충분히 이해할수 있다

 

조직의 분위기에 따라 회식참가가 강제적일수도 있고

회식 여부의 결정권자가 아닌 이상

내키지않아도 어쩔수 없는 경우가 많겠지.. (물론 회식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어땠을까.

꼭 참석해야 하는 회식, 혹은 접대에 강제로 붙잡혀 계셨을까

아니면 술자리가 좋아서 자진해서 남는 스타일이였을까...(-ㅅ-)

뭐. 동료들과 허심탄회한 술자리로 늦어지기도 하셨겠지.

아빠를 기다리며 보채는 어린 아들과 통화를 하는 젊은 아빠 손님의 모습을 보다가

나도 괜히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잠시 떠올려졌다.

 

그리고 자정이 지난 시간. 슬슬 마감준비를 하려는 참에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취한 꽐라 손님이 입장. (아 마감시간에 손님이라니 T_T)

곧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라 곤란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손님. 곧 문 닫을 시간입니다."

손님은 잠시만 있다 갈거라며 문 닫을 때 말해주면 나간다고 한다

주문은 "따뜻한 차 한잔"

 

음? 나한테 골라서 가져다 달라는건가? 오늘 왜이래? -ㅅ-

낮에는 찻집으로 운영할 계획도 있었던 우리 가게는 (물론 찻집은 하지 않게됐지만)

대추차, 인삼차, 오미자차 등 차의 종류가 꽤 많은 편이다

고심끝에 그 중 제일 잘 나가고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은 대추차를 권했더니

카페인이 있는건 없냐고 한다

(꼭 이렇다. -_- 아무거나 좋다라거나, 알아서 골라달라는 사람에게

뭔가를 권하면 상대는 내가 권한 결정과 다른 선택을 한다)

 

손님은 그 수많은 차중에서 하필 우리가게에서는 판매하지않는 "커피"를 달라고 했고

나는 임의로 카누 2개를 머그컵에 넣어서 타주었다.

 

꽐라 손님은 창문쪽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모금 마신 뒤, 한동안 전화통화를 했다 

(누군가에게 나오라 마라 막 이런 내용.)

곧 벗어둔 자켓을 입고 뭔가 생각에 빠진듯 가게를 서성거렸다

고민에 빠진듯 "후우........"한숨을 쉬기도 하고 엄지와 검지로 본인의 관자놀이를 누르거나,

머리를 쓸어넘기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5분쯤 가게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 다가온다.

 

뭐지? 뭐지?

 

나는 흠칫.

다시 TV를 보는 척하고 있는데 말을건다.

 

"여기.....출구가 어디죠? 어떻게 나가죠?"

 

출입문이 바로 앞에. 이렇게 크게 있는데

이 손님의 현재 상태로는 출구를 찾을수 없는 정도인듯

(술은 적당히 마십시다 )

 

나는 뭔가 굉장한 고민이 있나보다했었다

머리를 감싸고 가게 안을 빙빙 돌았던 이유가 나가는 문을 찾기위한 것일줄이야

나는 가게 출구는 물론 앨리베이터까지 안내해주었다

 

 

젊은 꽐라 손님을 마지막으로 이날 근무도 잘 마무리~

귀찮은 안주를 주문하거나,힘들게 하는 손님도 없었고 괜찮은 근무.무탈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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